4년 전 여름 병득이라는 스태프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는 특이하게도 프린지 스태프를 뽑는 인터뷰에서부터 ‘프린지 뽕’을 맞고 4년 동안 프린지와 함께했다. 그에게 있어 프린지는 단순한 직장이 아닌 본인 그 자체였다. 그랬던 그가 프린지를 그만둔다고 하여 자초지종을 듣고자 인터뷰를 요청했다. 처음에는 올해 8월을 다시 상기하는 것이 힘들 것 같다며 거절했지만, 오랜 설득 끝에 그를 만나볼 수 있었다.
Q. 프린지 스태프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가.
A. 친구의 권유로 시작했다. 휴학생으로 하루하루를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속에 살던 중 친구가 모집 공고 글 하나를 보내줬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18 기획/홍보 스태프 모집 글이었다. 하지만 프린지는 처음 들어보는 낯선 이름이었고, 축제에서 일 할 생각도 전혀 없었다. 그래서 거절했지만, 지원서 마감 두 시간 전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라는 마음으로 급하게 지원서를 써서 제출했고, 운 좋게 서류 통과 후 인터뷰까지 보고 시작하게 되었다. 후에 알 게 된 이야기인데 그때 인터뷰를 봤던 까리의 의견으로 내가 프린지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고마워요, 까리.
Q. 그동안 프린지에서 어떤 일을 해왔는가.
A. 나는 좀 특이한 경우였다고 생각한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사무국에 존재하는 모든 팀을 한 번씩 다 해봤다. 2018년에는 기획팀, 2019년 에는 운영팀, 2020년에는 사무국 행정, 2021년에는 홍보팀을 했다. 누군가의 강요로 팀을 옮겨 다닌 것은 절대 아니다. 사무국은 매년 연말에 내년에 있을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을 계획한다. 그 단계 때부터 각자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고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기 전인 다음연도 3월쯤 팀을 정한다. 그러므로 모두 내가 원해서 선택 한 일들이었다. 프린지는 개인 스태프가 하고자 하는 것을 전적으로 지원했고 나는 이런 자율성을 사랑했다. 그러나 모두 내가 선택한 일들이기 때문에 가끔 누구를 탓할 수 없어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 있어야만 했다.
Q. 일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인가.
A. 힘든 순간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존재한다. 크게 금전, 체력, 심리로 나눌 수 있다. 금전의 경우 최저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어떨 때는 월급 형식이 아니라 몇 달치를 한 번에 받는 식으로 임금을 받기 때문에 힘들 때가 있다. 체력적으로는 축제가 가까워지면 당연히 해야 하는 야간근무와 축제가 시작되면 모든 스태프가 함께하는 셋업, 현장, 철수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심리적으로 는 2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유지해온 축제를 내가 실수해서 망치면 안 된다는 심리적 압박 같은 것들이 있다. 간략하게 적었지만 힘든 순간을 에피소드별로 적자면 책 한 권을 써 내려 갈 수 있다. 하지만 일하면서 즐거운 순간들을 적자면 열두 권짜리 장편 시리즈를 연재할 수 있다. 그래서 금전적, 체력적,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프린지에서 계속 일할 수 있었다.
Q. 그렇다면 즐거웠던 프린지를 떠나는 이유가 무엇인가.
A.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상처를 받았다. 앞서 얘기했듯이 프린지를 하면서 힘든 순간은 다양하게 존재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상처를 받았다고 느낀 적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는 상처를 받았다. 사실 지금 하는 인터뷰를 처음에 거절했던 것도 이런 이유였다. 상처를 받았던 당시에는 덤덤했고,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는데 인터뷰 요청이 들어와서 준비하기 위해 올해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는데 회의록 하나만 열어도 눈물이 뚝뚝 흘렀다. 회의록, 디자인 시안, 그냥 시시하게 나누었던 잡담 등 모든 기록이 우리가 프린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보여주는 글들이었다. 그렇게 모두의 노력으로 만든 올해의 축제가 겪었던 일들, 그리고 그로 인해 받았던 상처들이 너무 컸다. 그리고 그런 나를 스스로 보듬지 않고 내년 프린지와 함께 한다는 것은 나에게도, 프린지에게도 좋지 않을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만두게 되었다.
또 다른 이유는 이제 다른 위치에서 프린지를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무국 스태프로 일하면 정말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는다. 아티스트, 자원활동가, 협력팀, 프린지 OB스태프, 후원 회원, 그리고 관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우리 에게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그 마음들은 프린지를 계속 이어나갈 힘이 된다. 그래서 이제는 안에서 힘을 받는 사람이 아닌 내가 사랑하는 프린지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 나아가 말로 건네는 응원보다 내가 더 성장해서 실질적으로 프린지에게 도움을 줄 수 있 는 존재로 성장하고 싶다.
인터뷰를 하면서 길게 자란 득의 머리가 눈에 띄었다. 득은 언제나 축제 가 끝나면 머리를 짧게 자르는 사람이었다. 우스갯소리로 ‘축제 끝나면 머리 자르는 게 일정’이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래서 9월이면 언제나 헤어스타일은 투블럭이었고, 축제를 하는 8월이면 단발머리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그는 축제가 끝난 12월인 지금까지 머리를 자르지 않고 있었다. 프린지를 떠난다고 이야기하지만 인터뷰에서도 자르지 못한 그의 머리에서도 그러지 않은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어디에서라도 프린지를 응원하고 있을 득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