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뜨거웠던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21>(이하 프린지)의여름을 가슴에 품고, 청량한 보랏빛 여름이 지나, 날 선 바람이 귓가에스치는 겨울이 되었다. 올해 인디스트로 함께했던 나 역시 프린지가 끝난 직후 바로 학교로 돌아갔다. 밀려오는 수업과 과제들에 파묻혀 지내다보니 지나간 여름을 그리워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코로나19 이후 2년 만에 학교에서 가을 축제가 열렸다. 축제 무대를 구성하고 공연팀들을 지원하는 무대감독(과 비슷한) 역할이 나에게 주어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프린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프린지와 함께한 2021년 여름 덕분에 나를 믿어주는 학교 사람들의 첫 무대를 지키는 데 가장 큰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2021 프린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개성 가득한 젊음의 거리, 혹은 자유로운 예술가들의 고향인 신촌-홍대일대는 나에게도 어린 시절 흔적이 가득한 고향이다. 덕분에 홍대를 거점으로 펼쳐지던 독립예술의 상징이 된 프린지를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흘러가는 시간과 주어진 상황을 따라가다 보니 2021년이 되어서야 프린지의 인디스트가 되었다. 작년까지는 문화비축기지와 같이 광활한 공간을 거점으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개최되었다고 한다. 관객과 아티스트, 프린지를 만드는 스탭들, 그리고 인디스트들이 함께 호흡을 맞추고 공간 구석구석을 누비며 축제가 만들어졌었다. 나 역시도 20년도까지의 프린지의 모습을 생각하며 현장을 뛰어다니는 인디스트 성냥의 모습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문화예술계가 큰 변곡점을 맞이하면서, 프린지 역시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도 축제를 지키기 위해 2021년은 신촌, 연희, 신수, 망원 4개의 섹터로 나뉘어 그 안의 민간-독립공간, 혹은 작은 예술공간들과 함께 축제가 진행되었다, (물론 개최 직후 내부 사정으로 섹터 외부의 다른 공간들에서도 진행되었다.) 그러다보니 이전에 비해 현장감에 대한 감각이 축소된 것은 아쉬웠지만, 오히려 특정 공간에 집중하게 되면서 작품 하나하나를 위해 움직이기에는 가장 좋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연희 섹터를 주로 담당했고 초반에는 플레이스막1, 마지막 며칠은 플랫폼팜파에서 인디스트 활동을 마무리했다. 축제 기간 동안 연희예술극장에 가장 많이 머물게 되었는데, 제일 크고 많은 사람들이 오갔던 공간인 만큼 사람에 대한 기억이 가장 짙게 남아있다.
플랫폼 팜파에서 <캠둥이를 이겨라!> 이후 찰칵
매년 프린지 인디스트들은 자신이 활동하고 싶은 팀에 지원할 수 있다. 여러팀이 있었지만 나는 고민 없이 예술가지원팀에 지원했었다. 예술가지원팀은 아티스트들을 포함해 프린지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가장 가까이 만날 수 있고, 하나의 작품이 올라가기 위한 모든 과정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특히 이번 프린지에서 현장 상황에 대한 실질적인 운영 주체는 모두 각각의 공간을 지키는 담당 스탭들과 인디스트들이 주축이 되었다. 각양각색의 공간 상황과 현장 스탭들의 스타일에 맞춰 현장이 운영되었다. 사실 다른 공연장에서 2년 가까이 일하면서 익은 나의 근무방식이 영향을 줄까 염려했는데, 오히려 나의 경험이 프린지에서 다른 인디스트분들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나의 판단이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에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부담을 느끼는 날도 있었지만, 응원해주시는 스탭들과 나보다 더 능력 있는, 유쾌하고 멋진 인디스트 친구들 덕분에 금방 내려놓았다. 평균 주 4일 내외를 대부분 프린지로 함께하다 보니 자주 보는 분들도 있었고, 때론 첫 출근 날이 마지막 만남이 되기도 했다. 출퇴근 시간이 엇갈리거나 역할이 겹치지 않아 마주치기만 했는데도 불구하고 친해진 인디스트도 있다. 어쩌면 축제 통해서 일상에서 잊어가고 있던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들을 이번 여름에 모두 채워갔던 것 역시 내가 프린지를 더 애정하게 된 이유가 되지 않을까.
프린지를 지원하면서 가지고 있던 또 다른 속마음에는 예술에 대한 목마름이 있던 것 같다. 한때 아티스트의 영역에서 활동하고 싶었지만, 꿈을 꾸던 20대 초반의 성냥이 가지고 있던 불꽃은 많이 작아져 있었다. 작아지는 불씨를 지켜보려 아등바등 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따라 일렁이듯 살아가고 있던 찰나에 2021년 프린지를 만났다. 사람들이 가진 에너지가 정말 좋았고, 공간을 지키면서 관람했던 작품들은 여전히 마음을 벅차오르게 했다. 코로나19로 더욱이 잊고 있던 현장의 에너지가 감각을 곤두세웠다.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이 곧 나의 작품이라는 마음으로 함께했다. 인디스트이자 때론 관객으로, 작품의 일부로서도 존재했다. 가장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자유로운 활동가 ‘인디스트’로서 프린지에 녹아들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내가 먼저 다가가는 만큼 프린지는 나에게 많은 것을 열어줬다. 내가 담당한 첫 작품의 무대 소품작업을 직접 해보고 싶어 아티스트분께 제안했는데 흔쾌히 맡겨주셨을 때 마치 벽을 허물어낸 기분이었다. 이후 아티스트들에 의해 늘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연희예술극장과 벽 한 켠에 적힌 선언문. 플레이스막1과 플랫폼 팜파를 지키면서 바라보던 연희동의 잊지 못할 풍경들, 퇴근 후 축제상황실로 향하면서 눈에 담은 밤 풍경에 온도를 더해주던 스탭들의 다정한 인사까지, 프린지의 순간들은 모두 예술을 처음 만났을 때 못지않은 수많은 설렘들과 닮아 있었다. 예술적인 경험이 직접적인 예술 활동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마음을 두고 가까이 할 때 다가오는 모든 것들이 예술의 영역에 들어간다는 것을 프린지가 다시금 깨닫게 해줬다.
처음은 모두에게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순간이다. 모든 이들의 처음을 지지하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독립예술축제 프린지는 아티스트들에게도, 인디스트들에게도 첫걸음을 내딛는데 용기를 내기 정말 좋은 곳이다. 나의 첫 인디스트 활동 역시 감사하게도 프린지를 만든 다정한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좋은 경험과 기억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래서 나에게 프린지는 ‘다시 돌아오고 싶은 자유’ 그 자체이다.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곳. 2021년에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사실 다소 꼼꼼하지 못해 매 순간의 감각들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나의 노트 안에는 매일 프린지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이 남아있다. 이 페이지에 모든 이름들을 수놓을 수 없지만 나의 이름 ‘성냥’을 불러주던 모든 이들과 함께한 순간들에 감사했다고 이 자리를 빌어 전해본다. 어떤 모습이든 우리를 반겨줄 또 다른 내일의 프린지를 응원하며 - 친애하는 나의 자유, 다시 돌아올 때까지 안녕!